Intro
법률의 기본적인 정신은 이른바 성악설(性惡說)에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과의 약속을 배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그러한 배반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하며 나아가 사회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이 바로 법치주의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현재 민사소송 – 원칙적으로는 형사소송도 그렇지만 – 의 기본 원칙인 “당사자주의”를 살펴 보면, 결국 당사자가 자신의 이익을 걸고 법원에 출석하여 진실된 이야기를 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1고 보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당사자끼리 죽어라 거짓말을 주고받게 한 뒤, 그 싸움을 지켜보는 제3자인 법관이 사실의 당부를 판단하겠다는 생각이 자리잡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의 연구성과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삶의 면면에서 여실히 드러나거나 사람들의 행실에 번번이 묻어나기에, 비록 뱃속 깊이 간직한 양심이 거치적거리기는 하여도, 결국 누구나 위와 같은 관념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현대 법치주의가 전제하는 “거짓말 하는 인간(Homo mendacem2)”의 관점에서 볼 때, 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 이행을 강제할 수 없다면 법률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법치주의의 지배하에서 이행의 강제를 위해 목에 칼을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를 위하여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능력 – 미래를 예측하고 두려워하는 능력을 이용하게 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큰 코 다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약의 기본적인 성질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위약금 또는 위약벌은 계약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것이며, 동시에 계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계약다운”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실무에서는 위약금과 위약벌이 아주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쟁점인 것은 전자인데, 이에 관하여 살펴 보면서 가볍게 후자에 대하여서도 browse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두 개념은 불가분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위약벌을 통해서 살피는 위약금의 본질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퓌(Ludwig von Bertalanffy)는 이른바 GST로 불리우는 시스템 이론(General Systems Theory)으로 유명합니다. 해당 이론에는 여러 개념과 통찰이 녹아들어 있습니다만, 그 중 재미있는 일부는 경계(Boundary)의 개념입니다. 하나의 시스템, 즉 체계는 다른 체계와 사이 구분, 투과, 조절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생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조금 비슷한 느낌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새로운 언어를 공부할 때 유의어 – Synonym을 익히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도 없습니다. 결국 하나의 개념을 안다는 것은 그 개념이 다른 개념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안다는 것이라고 말하여도 전혀 틀리지 않고, 오히려 아주 우수한 서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고방식이 오늘 위약금에도 딱 들어맞습니다.
위약금(違約金)이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위약벌(違約罰)과의 비교가 가장 적절합니다. 한자 문화권인 우리 언어에서 양자의 차이는 맨 뒤의 金과 罰뿐입니다. 어차피 둘 다 금전적 제재이니 그다지 좋은 분석방법은 아니겠습니다. 다음으로 실제 위약의 정도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위약금이라고 하면 계약의 가벼운 위반, 위약벌이라고 하면 보다 중대하거나 본질적인 사항의 위반이거나, 위반 자체에 반사회질서적 요소가 묻어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충분히 해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말입니다만,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위반행위의 경중(輕重)은 위약금과 위약벌을 나누는 기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위약벌이 위약금보다 더 센 패널티를 부여하도록 허용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볼 만 합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No이자 Yes입니다. 위약금이 위약벌보다 약하게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실제 송사로 이어진다면 민법 제398조 제4항, 제2항의 순차적 작동에 의하여 위약금에 대하여서만 감액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실무적으로 이러한 감액이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34.
남성민, “주석 민법 채권총칙(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2020.), 60면은 위약금(손해배상의 예정)과 위약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 예정액과 위약벌 모두 채무불이행에 대한 구제수단으로 인정된다. 두 가지 모두 손해전보 및 채무이행의 간접강제 기능을 가진다. 다만 손해배상 예정액은 손해전보 측면에, 위약벌은 이행강제 측면에 무게를 둔다.
필자가 보기에 위약금의 본질을 간명하게 설명한 좋은 문장이며, 동의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위약벌과 위약금은 단지 민법의 임의감액규정 및 실무상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다만 손해배상의 예정은 손해배상액의 입증책임을 완화시키는 데에, 위약벌은 그러한 손해배상 또는 위약벌을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이행을 강제하는 데에 “보다” 중점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대법원이 위약벌과 위약금의 주된 구별기준으로 “별도의 손해배상에 관한 약정이 존재하였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5외 다수 – 참고로 해당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은 본 칼럼의 의견과 반대로 위약금과 위약벌의 개념과 취지가 상이하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손해배상의 예정은 어디까지나 위약금으로 ‘추정’될 뿐, 양자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일단 손해배상의 예정에 관하여서는 위 다수의견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위약금에 대하여서도? 글쎄요. 각자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계약금과 위약금의 관계 –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듯 어려운 위약금 약정의 보충적 인정(재판실무)
위약금과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개념으로 계약금이 있습니다. 계약금의 본질, 특히 해약금으로서의 성질에 관하여서는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다73611 판결이 Leading case로 정착되어 있으며, 이에 관하여 이루어진 훌륭한 평석이나 논문 역시 부지기수입니다. 아래의 내용을 읽어 보시기 전에 해당 내용을 복기해 보시거나,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한번 Google해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오늘의 주제에서 문제가 되는 계약금의 요소는 바로 위약금으로서의 계약금입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가장 머리 아픈 분야인 법리의 부분, 특히 처분문서의 해석 부분을 짚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대법원은 계약서 등 권리의 처분에 관한 입증 또는 처분 그 자체를 위하여 작성된 문서, 즉 처분문서의 해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일관된 판시를 내리고 있습니다.
처분문서는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으면 처분문서에 기재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행위로써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다253430 판결 외 다수
위와 같은 판례를 쉽게 요약하면, <1) 문서에 쓰여 있는 대로만 해석하되, 2) 쓰여 있는 문자의 해석이 문제라면,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해석(=보충적 해석)한다.>입니다.
그렇다면 “안 쓴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
통상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계약 당사자는 잔금일까지 생존함으로써 권리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지급된 원화(원6貨)는 잔금일까지 계속 통용되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등의 시시콜콜한 문구를 삽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은 당사자 사이에서 이미 별도의 외부적 용태, 즉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더라도 이미 쌍방의 내심의 인식, 즉 내부적 용태에 의하여 법률사실의 합치 및 법률요건(계약)의 형성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상대도 알고 나도 아는 걸 무엇하러 계약서에 넣는가?”라는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계약서에는 계약의 성립 및 변경, 소멸, 그 법률효과에 관한 사항과 관련된 중요한 문언만을 삽입하면 족합니다7.
우리네의 일반적인 상식에 따르면 – 예컨대 중고로 10만원어치 이불을 구입하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매매계약을 떠올려 볼 때, 이불의 판매자가 구매자의 일방적인 변심 또는 소위 No-show를 방지하기 위하여 판매대금의 10% 상당에 해당하는 선돈(先돈) 1만원 정도를 계약금조로 받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를 잘 분석해 보면, 실제 계약금이 해약금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위와 같이 계약금을 지급한 이불 구매자가 이불 판매자에게 연락하여 “1만원을 포기할 테니 오늘 거래장소에 안 나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경우는 생각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당장 약속시간, 약속장소에 이불 구매자가 등장하지 아니함에 따라, 이불 판매자가 이불 구매자에게 “오늘 나오지 않았으니 거래는 깨는 것으로 하고, 1만원은 몰취하겠습니다.”라고 통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입니다. 위의 예시를 각각 예시 1, 2라고 부르겠습니다. 예시 3은, 이불의 구매자가 나머지 9만원을 지급함과 동시에 이불을 사 들고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이불이 찢어져 있거나 성상(性狀)이 예정한 것과 달라서 – 예컨대 알파카 이불을 사 왔는데 알고 보니 개털 이불이었다는 등 – , 하자(瑕疵)를 이유로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계약금의 수수가 없었다면 10만원을 돌려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계약금을 주고받은 이상 11만원을 돌려받는 경우 또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 예시 1과 예시 2는 얼핏 보기에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법률적인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시 1은 매매계약의 매수인이 민법 제565조 제1항을 근거로 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모습입니다. 해당 권리행사의 근거는 민법이므로, 당사자는 현행 민법의 시행이 모종의 이유로 정지되어 있지 아니한 이상, 그러한 권리행사의 요건이나 방법에 관하여 별도로 정할 필요8없이 바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예시 2는 매수인의 채무불이행, 주로 대금지급채무9의 불이행, 구체적으로는 이행지체10에 따라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하는 모습입니다. 민법에서는 채무자의 이행지체가 있는 경우 일정한 요건하에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으며, 이 경우 손해배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까지는 정하고 있으나(민법 제551조), 그러한 손해의 내용과 계약금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에(missing link), 결과적으로 매도인은 민법 제390조에 따른 손해배상의 요건 및 자신의 구체적인 손해액 – 예컨대 약속장소까지 나가는 데 소요된 교통비(신뢰이익11) 3,000원 등 – 까지 모두 주장 · 입증해야만 비로소 그 입증에 성공한 만큼의 돈만큼만 몰취하고, 상계 후 잔액 7,000원은 다시 이자12까지 붙여서 매수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보기만 해도 매우 번거롭고 불편한 법률관계를 간소화하기 위하여, 부동산 등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대체로 부동문자를 이용해 ‘계약금을 위약금의 기준으로 한다.’라는 특약을 넣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위와 같은 특약이 들어가지 않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도 실무에서는 생각 외로 잦은 일인더러, 예시 2처럼 당초에 계약서라는 것을 작성하지 않는 경우 위와 같은 사항을 구두로 합의하는 경우는 더욱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제기됩니다. 과연 계약서에 안 쓴 사항이라 하여 당사자 사이에서 합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 처분문서의 해석에 관한 위 대법원 판례는 어디까지나 처분문서에 기재된 문언에 관한 해석론을 설시하고 있으며, 기재되지 아니한 부분에 관한 묵시적 합의13의 인정기준에 관하여서까지는 설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 관하여서는 새로운 법리가 자리잡을 틈이 존재하며, 실무상 묵시적 합의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앞으로 그러한 법리는 자리잡혀야 합니다. 아무튼, 묵시적 의사표시에 관하여 판단할 때 반드시 생각해 봄 직한 법리는 착오의 보충적 해석에 관한 ‘정당한 이익조정의사’입니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5다13288 판결 외). 해당 개념은 쉽게 말해, “당사자가 뭐라고 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객관적으로 보아 그러한 의사를 인정할 법한 사정이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위 예시들을 참고하여 위와 같은 법리를 풀어 보겠습니다. 거래통념상 계약금을 걸라고 요구하는 것은 보통 매도인이며, 매수인의 경우 2중매매를 막기 위한 경우(속칭 ‘찜’)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먼저 계약금을 걸자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계약금은 대부분 매도인의 관점에서 거래의 안전성을 보강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됩니다. 잠시 순서를 바꾸어, 예시 3의 경우는 어떨까요? 알파카 이불이 개털임을 알게 된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속은 것이 분하기도 하여, ‘계약금을 걸어 놓았으니 그 배액상환으로 11만원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도 함직하나,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고, 매도인이 선뜻 이에 동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도 그러할 것이, 계약금 1만원을 먼저 요구한 것은 매도인일 터인데, 그러한 1만원의 계약금 조항이 매도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방향으로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가 이루어졌다고 해석하는 것은 매도인의 ‘정당한 이익조정의사14‘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시 3의 경우 손해배상 예정에 관한 합의가 없는 이상 11만원을 돌려받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와 달리, 예컨대 위에서 언급한 ‘찜’돈 1만원이 지급된 특별한 경우를 예시 4로 새로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해당 1만원은 매도인의 2중매매를 막기 위해, 즉 매수인이 ‘현재 조건하 계약체결 및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넣어 둔 것이기에, 매도인이 제3자에게 이불을 15만원에 파는 등 계약을 어기는 경우, 매수인은 당연히 1만원은 물론 + 1만원 = 총 2만원의 반환을 구할 것이고, 매도인이 이에 대하여 사회상규나 인지상정을 따질 요량은 있을지언정 “‘그런 법이 어디에 있나?’라며 따져 묻는 경우란 생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시 3과 4는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1만 원의 선돈을 지급한 뒤 채무불이행에 의하여 계약을 해제한 뒤 원상회복을 청구’한다는 사실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익관계 및 계약금 지급요구의 주체에 따라 위처럼 ‘묵시적 의사표시’의 인정, 나아가 2만 원의 반환에 관한 청구의 당부는 천양지차입니다.
이제 실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예시 2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시 4와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역시 예시 2의 경우에도 계약금을 걸자고 하는 것은 매도인입니다15. 매도인이 그러한 계약금을 걸자고 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매수인으로 하여금 계약체결 및 이행을 강제하도록 하기 위하여입니다. 따라서, “계약금을 거세요.”라는 매도인의 표현은 실제로 “위약금으로서 계약금을 예치하세요.”라는 의사의 표시이며, 그러한 의미야말로 계약금이 가지는 다른 의미들 – 예컨대 “이 계약금은 해약금입니다.”라거나 “계약금의 예치로 계약금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따위의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매도인과 매수인이 모두 정상적인 사회인 – 즉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의 별개의견16 참고)’이라는 전제에서 볼 때, 매수인이 위와 같은 매도인의 계약금 지급요청에 응하는 것은, 구태여 처분문서의 작성 또는 그에 준하는 녹음 등으로 증명되는 대화를 나누지는 아니하였더라도, ‘위약금으로서 계약금을 예치하는 데에 동의한다.’라는 의사의 합치가 존재하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계약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약금으로 (사실상 )추정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와 달리 보아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보지 않는다면,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1만원을 해약금으로 하여 몰취당하느니 그냥 채무불이행 상태를 만연히 유지함으로써 계약에 관한 최종적 의사결정의 위험성을 회피할 수 있고, 추후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1만원의 반환 및 손해의 입증책임을 매도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사실상 1만원의 반환 또한 상당 부분 보전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된다면 매도인의 입장에서는 애당초 계약금 지급을 제안하는 어떠한 경제적 이익17도 없게 됩니다. 이는 매도인의 ‘정당한 이익조정의사 ‘에 완전히 반하는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그런 의도로 계약금을 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실무는 어떠한가. 최근 수행한 사건을 예시로 들겠습니다. 매매계약은 구두로 이루어졌는데, 재미있게도 매수인의 요구에 따라 매도인은 “매매목적물의 품질에 이상이 있는 경우 계약금의 배액을 보상한다.”라는 각서를 작성하여 주었습니다. 즉, 당사자 사이에서는 이미 계약금을 손해배상의 기준으로 보는 합의가 존재하였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대법원 1979. 4. 24. 선고 79다217 판결 이후 이어져 온 대법원의 전통적 법리, 즉 “계약금은 해약금으로만 추정되므로 위약금으로 보기 위하여서는 별도의 입증이 필요하다.”를 너무나 충실하게 지키면서 위와 같은 각서의 존재만으로는 위약금 약정에 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글쎄요. 물론 판결의 논리 자체는 기존 판례의 법리에 충실한 것이며, 이러한 판결들이 공론화되면서 거래실무(대표적으로 부동산 ‘가계약’)에서도 손해배상 예정에 관한 사항을 확실하게 규정함으로써 당사자 사이 분쟁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등, 이러한 재판실무에도 여러모로 긍정적인 부분과 납득가능한 사정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법감정을 가진 상식인의 관점에서, 더욱이 Platform 경제화에 힘입어 계약서 작성에 나아가지 않는 C2C 거래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과연 대법원의 기존 판례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법이 이처럼 ‘상식’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경우 거래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 예를 들어 이제 막 성인이 되었거나 외국인이거나 하여 생애 최초로 개인 간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자들에게 지나치게 불이익한 것은 아닌가? 매우 큰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의는 설득력에 달려 있습니다.
최근 공 · 사적으로 존경하는 한 교수님과 함께 롤즈(John Bordley Rawls)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 관하여 분석 및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상적 깊이를 모두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간명하게 나누어 볼 때 정의(justice)는 공정성(fairness)에서, 공정성은 정당화(justification)에서 도출됩니다. 단순한 3단논법에 기초하여 생각하면, 결국 ‘구성원들에 대한 설득이 잘 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다.’라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도 합치합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법의 지배에 복종은 하지만 내심으로 도무지 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러한 사회는 법규의 내재적 일관성(internal consistency)이 얼마나 높든지간에 최소한 정의라는 기준에서는 이를 달성하였다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이러한 점에서 약법삼장(約法三章)이 한비자의 법가보다도 오히려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이겠지요}. 법과 상식이 보다 밀착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위법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 다양성의 면을 제외하고는 )보다 튼튼하고 바람직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현행 대법원의 판례와 재판실무는 더욱 깊이 있고 반성적인 고민을 거쳐 다듬어 가야 할 것입니다.
- 사실 위와 같은 점이 바로 당사자의 진술을 증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며, 이와 동시에 당사자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를 위증(형법 제152조)나 증거인멸 등(형법 제155조 각항)으로 단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
- 필자의 조어(造語)입니다. 물론 라틴어 mendacem은 실제 있는 말입니다. Lying, deceiving이라는 의미입니다. ↩︎
- 위약벌의 경우에는 그 금액이나 양자의 경제적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반사회질서적 행위(민법 제103조)라거나 폭리행위(민법 제104조)라는 이유로 무효화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합니다만, 위와 같은 방어방법들 – 특히 민법 제104조는 실무적으로 상당히 고도의 입증을 요구하기 때문에, 법관이 마음대로 소위 ‘원님재판’을 내려도 별 탈이 없는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비하여 훨씬 경성(硬性)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특히 민법 제103조 및 제104조의 강력한 법리상 판결의 효력이 무조건적으로 “모 아니면 도”로 나고, 제3자에 대하여서도 예외 없이 효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거래의 안전에 미치는 파급이 너무나 강하고 부담스럽다는 점 역시 법관의 판단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
- 위약금에 대하여서도 당연히 민법 제103조 및 제104조의 적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위약금은 그 성질상 위약벌보다 연성(軟性)이다 보니, 안 그래도 적용이 어려운 위 두 법리를 이용하기에 매우 부담스러울 뿐더러, 이미 민법 제398조 제2항이 “큰 문과 넓은 길(마태복음 제7장 제13절)”을 열어 놓은 상태이므로, 판사도 사람인 이상 위와 같은 우회로를 선택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
- 참고로 해당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례요지 중 반대의견을 인용하여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이흥구, 대법관 천대엽, 대법관 오경미의 반대의견] 위약벌은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함께 위약금의 일종으로서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하여 감액할 수 있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은 그 기능이 유사하다. 그런데도 약정의 형식이나 해석 결과에 따라 감액 여부를 달리 취급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존 판례는 위약벌의 감액을 부정하는 대신 일반조항인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의 효력 통제를 통해 위약벌 감액을 인정하는 것과 유사한 결론에 이르려고 하고 있다. 이는 먼 길을 돌아가는 불필요한 우회로이다. 위약벌에 관해서도 손해배상액의 예정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감액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에 부합한다. 이것이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을 애써 구별한 다음 다시 감액과 효력 통제라는 각기 다른 통로를 통과하여 유사한 결론에 이르는 불필요한 노고를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더군다나 위약벌을 민법 제103조를 통해 해결하려는 기존 판례는 극히 예외적으로 위약벌의 일부 무효를 인정하여 공평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수의견에 비하여 논리구조는 다소 부족할지언정 대법관들의 意志와 勇氣가 느껴집니다. 음미할 가치가 있습니다. ↩︎ -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의 화폐인 ‘₩’에는 대응하는 한자가 없습니다. 1962. 통화개혁 이전에는 원(圓)이나 환(圜)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위 개혁과 동시에 순우리말인 ‘원’으로 화폐단위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924,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B%90(%ED%99%94%ED%8F%90)#fn-11 참고). 본래 원(圓) 자체가 일본에서 사용되던 표현이고, 조선에서 사용되던 환(圜)은 사용이 불편하다 보니, 편의상 ‘원’으로 돌아가기는 하되 한자는 놓고 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
- 따라서 예컨대 “정해지지 않은 나머지 사항은 상관행 및 민법에 의한다.”거나, “연체차임이 2기(상가의 경우 3기)에 이른 경우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는 등의 문구는, 최소한 계약서로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것입니다{다만 법률비전문가끼리의 계약을 전제할 때 해당 계약서 문구의 존재를 이유로 전문가인 공인중개사 등이 그러한 법률규정을 설명하는 단서 내지 교재(敎材)로서의 의미는 있겠습니다}. ↩︎
- 한편, 이를 별도로 정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는 민법 제565조의 강행규정 여부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의외로 우리 대법원은 이에 관한 명시적 판례를 두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최창렬. (2016). “解約金 契約의 法的 性質 – 대상판결 : 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78판결 -“. 토지법학, 32(2), 259-307. 등 다수의 논문들에서는 해당 규정의 임의규정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민법의 대부분 규정은 사적자치원칙의 보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들이므로, 특별한 경우(대표적으로 임대차계약의 편면적 강제성을 명시한 민법 제652조 등)가 아닌 이상, 이는 임의규정을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
- 조금 더 생각하면, 이불의 매수인으로서는 이불의 매도인으로부터 이불을 인도받아 수거해야 하는 채무가 있지 않은가? 라는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불에 재산상의 가치가 존재하는 이상 이를 인도받는다는 것은 의무보다는 권리의 성질이 강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매수인의 No-show는 채권자지체(민법 제400조)를 형성합니다. Long story short, 매도인은 길바닥에 이불을 버리고 갈 수는 없더라도, 자기재산과 동일한 정도의 주의의무(타인재산에 비하면 현저히 감경된 주의의무입니다, 특정물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민법 제374조 참고)만으로 이불을 보관하며, 그 보관비용을 매수인에게 청구하고(403조),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이상 이불의 훼손 등에 대하여서도 일절 책임을 지지 않게 됩니다(401조). 그러나 우리네 법감정과 같이 “그냥 이불을 불태워 버리고 간다.”라는 것은 아무래도 채무불이행의 문제를 수반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확고한 이행거절의사와 계약해제의사표시의 전달(대법원 2021. 7. 15. 선고 2018다214210 판결 외 다수)이 없는 한.. ↩︎
- 엄밀히 말하면, 이행지체에 관하여서는 민법 제544조에서 매우 번거로운 절차를 정해 놓은 탓에 해제가 조금 어렵기는 합니다(사견으로, 해당 규정은 1960. 민법 시행 당시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이행에 관한 갖은 조건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현대에 와서 해당 조문과 같이 번거로운 절차와 일방적인 보호를 유지할 실익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거래의 일반적인 경험칙에 비추어, 면식 없는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소액거래에 있어서 사전 양해연락 없는 No-show는 곧 ‘묵시적 이행거절의사의 표시(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법률행위의 성립에 관하여서는 대법원 2011. 9. 29. 선고 2011다30765 판결 등 참고)’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매도인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제권이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
- 신뢰이익과 이행이익의 구별은 꽤나 까다롭기는 합니다만, 급부가 이행될 경우 얻을 수 있었던 가상의 손해가 이행이익이고, 본래 예정된 ‘비용’의 성질이나 급부가 불이행됨으로써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 지출이 신뢰이익이라고 생각하면 구별이 편한 것 같습니다(사견입니다). 계약의 해제시에도 신뢰이익의 배상을 구할 수 있다는 판례로는, 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1다75295 판결 참고. ↩︎
- 사례에서 계약금 반환의 법적 성질은 원상회복이며(민법 제548저 제1항), 금전급부에 관한 원상회복의 경우 이자를 붙이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민법 제548조 제2항). 만일 이와 같은 조문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원상회복청구권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일종이므로(대법원 1997. 12. 9. 선고 96다47586 판결) 민법 제748조가 적용되며, 이와 동시에 금전의 점유자라는 지위에서 민법 제201조(특히, 제1항에서 정하는 선의의 수익자에 대한 과실수취권)가 동시에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금전은 재산상의 이익이며 물건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동전이나 지폐를 실제 수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민법 제201조의 적용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제748조 제1항에 의하여, 매도인이 7,000원을 은행에 예치하는 등 통상적인 방법(대법원 1995. 5. 12. 선고 94다25551 판결 참고)으로 운용하여 얻은 수익이 존재하는 한도 내에서 이를 반환해야 할 것이며, 그 입증책임은 반환을 청구하는 매수인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매도인이 돈을 받아서 어떻게 굴렸는지 어떻게 입증하는가? 그게 어려우니 민법 제 548조 제2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 실무를 뛰다 보면 놀라는 부분 중 하나가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입니다. 즉, 우리네 거래현실에서는, 그리고 그에 기반한 법적 공방을 주고받는 민사소송의 실무에서는,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라는 개념이 쟁점화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할뿐더러 상당히 많은 경우에는 그러한 합치여부가 청구의 당부를 결정하는 우량한 쟁점으로 부상하여 있는 경우가 흔함에 비하여, 대법원은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에 관한 법리를 그다지 발전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때 사용하게 되는 Leading case라면 대법원 1998. 8. 21. 선고 98다17602 판결인데, 해당 판결은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에 관한 ‘계약해제’에 관하여 나름대로 상세히 설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해당 판결에서 제시하는 논리구조가 워낙 세련되고 명확해서 – 즉, 내심의 의사에 기한 행위가 너무나 확실하여 이와 양립불가능한 다른 의사에 기한 행위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 법리에 기반해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에 관한 법리를 뽑아내는 것이 용이한 편입니다. 다만 실제 재판부에서 위와 같은 판례의 법리와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에 관한 논리구조를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적당히 “묵시적으로 합치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사실인정하면 끝나는 일이기에..(큰 문과 넓은 길이 열려 있습니다) ↩︎
- 정당한 이익조정의사라는 개념은 현행 판례상 착오에 따른 법률행위의 보충적 해석이라는 영역에 한하여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개념은 유추 및 확장적용이 가능한 것이므로, 위와 같은 개념을 묵시적 의사표시의 합치에 관하여 사용하는 데에는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마침 그 개념이 화제와 찰떡궁합인데 구태여 유사한 개념과 언어를 만들어 낼 필요도 없고 말입니다. Homo mandecem처럼.. ↩︎
- 사실 이는 예시 1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나, 이는 민법에서 해약금의 법리를 정해 놓고 있는 것이라, 구태여 당사자 사이의 묵시적 의사표시에 관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
- 참고로 위 별개의견은 민법상 의사표시와 내심의 의사 및 그 형성과정을 경제학적 ·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기존의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논파하고자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법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으로서 매우 고무적인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정보화 시대인 21세기에 소멸시효의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다면 사실상의 추정을 당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들 사이 시효소멸한 채무승인에 관하여 나누는 대화 또는 의사표시 자체가 포기를 의미하는 것일 터이고 말입니다. 대법원에서 말하는 ‘이례적’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old한 기준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 현실적으로 매도인이 지급받아야 할 손해배상액을 먼저 수령하고 있음으로써 그 지급을 담보하는 정도의 이익은 있겠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수준의 이익이며, 매도인이 최초에 계약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상정하는 수준의 경제적 이익에 비하여서는 매우 약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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